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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자, 사위 故 김주승 파란만장 인생사! 이철희와 초호화 결혼식으로 입방아! 일흔 다섯의 나이에 수감 생활만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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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철 기자
기사입력 2019-01-13

▲     © 손헌철 기자



1980년대 7000억원대 희대의 어음 사기 사건을 벌인 장영자(74) 씨가 또다시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운데 그의 전 사위였던 고(故) 김주승도 재조명 되고 있다.

김국민대 사학과 재학 중이던 1983년 MBC 16기 공채 탤런트로 뽑혀 드라마 '아버지와 아들'로 데뷔한 김주승은 이후 1985년 드라마 ‘첫사랑’에서 황신혜의 상대역을 맡으며 80년대 멜로의 왕자라고 불리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1990년에는 사채시장의 큰손이었던 장영자의 딸 김모 씨와의 결혼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1994년 장영자 부도사건의 여파로 미국으로 도피했으며 3년 후에는 췌장암이 발병해 큰 위기를 맞았다. 이후 심기일전한 김주승은 2002년 MBC 드라마 '리멤버' 등에 출연하면서 팬들에게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2003년에는 제18대 한국방송연기자협회 회장으로 선임돼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재기 의욕을 불태웠다. 

2005년 이후로는 제작자로의 변신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재정난으로 드라마 제작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된 김주승은 김 씨와 17년 만에 이혼까지 하면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이후 김주승은 췌장암이 재발해 주위 동료들과 연락을 끊고 요양 생활을 시작했으나 결국 같은해 8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한편 법조계에 따르면 장씨는 올 초 검찰에 구속기소 돼 재판을 받고 있다.

1983년 처음 징역형을 선고받은 이후 네 번 째 구속으로 일흔 다섯의 나이에 수감 생활만 30년 째다.

2015년 1월 교도소에서 출소한 장씨는 남편인 고(故) 이철희 씨 명의 재산으로 재단을 만들려 하는데, 상속을 위해선 현금이 필요하다고 속이는 등의 수법으로 수억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영자는 앞서 1983년 7000억 원대 어음사기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형기를 5년 남겨 둔 1992년 가석방됐다.

이후 1994년 사위인 김주승이 운영하던 회사의 부도사건으로 다시 한번 구속된 후 1998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이후 2000년 220억 원대 구권 화폐 사건으로 세 번째 구속된 바 있다.

전라남도 목포 출신인 그녀는 계성여자고등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를 졸업했다.

전라남도 목포시내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장영자는 아홉 살 때인 1953년 서울에 올라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대학에 다니다 숙명여자대학교 교육학과에 편입했다.

숙명여자대학교 재학시절 장영자는 '메이퀸'으로 뽑히기도 했다. 대학재학 시절 첫 결혼하였으나 이혼했다.

1979년 당시 유정회 소속 국회의원이었고 중앙정보부 차장까지 지낸 이철희를 만났다. 1982년 2월 서울 장충동 사파리 클럽에서 정관계인사들을 대거 초청해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초호화판 결혼식을 올려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언니 장성희는 전두환의 장인이자 이순자의 친정 아버지 이규동의 동생 이규광과 결혼했다.

그녀는 제5공화국 당시 자신의 2번째 남편 이철희와 함께 거액의 어음 사기 사건에 연루되며 이후 "큰손"이라고 불렸다.

1982년에 장영자는 그 해 남편 이철희를 내세워 고위층과 긴밀한 관계를 과시하면서 기업자금지원의 대가로 지원금의 몇 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 사채시장에 유통하는 수법으로2천억 원대의 사기 행각을 벌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검찰은 이들이 명동 암달러시장과 캘리포니아에서 80만 달러를 모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가 이루어질수록 이철희·장영자 부부의 사기행각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 규모임이 드러났다.

전두환의 처삼촌 이규광의 처제였던 장영자는, 중앙정보부 차장을 지낸 남편 이철희와 함께 권력을 배경으로 주로 자금압박에 시달리는 건설업체들에 접근했다.

부부는 이들 업체에게 조건이 좋은 자금조달을 제시하였고, 그 담보로 대여액의 2∼9배에 달하는 약속어음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약속어음을 할인해 또 다른 회사에 빌려주거나, 주식에 투자하는 등의 방법으로 어음을 유통시키고 사기행각을 벌였다.

이를 통해 이철희·장영자 부부는 1981년 2월부터 1982년 4월까지 7,111억 원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냈고, 총 6,404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자금을 조성하였음이 수사 결과 밝혀졌다.

어음 사기 혐의로 1982년 5월 4일 검찰에 구속되었고 당시 장씨 부부는 물론 은행장 2명과 내로라하는 기업인 등 모두 32명이 구속됐고 장씨의 형부이자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 씨도 사건에 휘말려 구속됐다.

1983년 희대의 어음사기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뒤 형기를 5년남겨 둔 1992년 3월 가석방되었다.

1차 구속 당시 함께 구속됐던 남편 이철희는 1991년 6월 먼저 가석방되자 곧바로장씨가 수감 중이던 청주교도소 근처에 방을 얻어 이듬해 3월 장영자가 가석방될 때까지 옥바라지하는 부부애를 과시, 화제가 됐다.

그러나 출소 1년10개월 만인 1994년 1월 다시 140억 원의 차용사기 사건으로 다시 구속돼 징역 4년형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됐다.

장씨는 1998년 8.15특사로 출소했으나 2년 후 2000년 구권(舊券) 화폐 사기사건 때문에 2001년 복역하기도 하였다.
구속 직전까지 자신은 피해자이고 권력투쟁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고 알려져 있다.

다시 구속되면서 1992년의 가석방이 취소되는 바람에 남은 형을 복역하고 재판받았으며, 2004년 장영자에게는 징역 2년이, 남편 이철희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그러나 장영자가 김모씨로부터 가로챘다는 4억 600만원에 대해서는 증거부족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2006년에는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2015년 1월 22일 만기 출소하였다. 남편 이철희는 1심대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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